post by 백만돌이
나는 왜 나쁜 선생님이 되었는가
10월 10일. 내일은 현장체험학습 날입니다. 수업이 끝나고 제 주위로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는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모습. 제가 그 모습에 살며시 용기를 불어넣어줍니다.
“선생님에게 할 말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하세요 ^^.”
실제로 저는 아이들에게도 존댓말을 씁니다. 매 순간 아이들을 존중하겠다는 저의 의지입니다.
“선생님, 부모님께서 내일 선생님께 간식 드리면 안 된다고 하시던데... 사실이에요?"
우리 반 오늘 반장이 조심히 말을 꺼내더군요.
우리 반 아이들은 잔정이 많아서 평소에도 사탕 하나, 껌 하나 등 소소한 간식 거리를 저에게 자주 가지고 오곤 합니다. 그 때마다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리액션을 총 동원해서 기쁜 마음을 표현하지요. 그럼 아이들은 이런 제 모습을 보고 또 한 번 행복한 웃음을 짓습니다.
9월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부터 저는 꾀병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사탕을 가지고 오면 아프지 않던 이가 아팠고, 가끔은 배도 아팠습니다. 머리가 아플 때도 있었죠. 갑작스런 선생님의 태도 변화에 처음엔 정말 선생님이 아프시다고 진심으로 걱정해 주었습니다. 선생님이 아프시니깐 더욱 열심히 하자고 하루 열기 시간에 스스로 다짐도 하더군요. 너무 기특하기도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혹여 나중에 저의 꾀병이 들통 났을 때 실망하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도 되었구요. 거짓말만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였던 저의 언행에도 반하는 일입니다.
이제는 사실을 말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선생님은 여러분이 주는 간식을 받을 수가 없어요. 선물도 마찬가지구요. 만약 여러분이 주는 선물을 선생님이 받는다면 선생님은 죄를 짓는 거에요. 선생님께 무엇이든 주고 싶은 마음 잘 알아요. 선생님도 마찬가지니까요. 여러분의 그 마음만으로도 선생님은 너무나 행복합니다 ^^.”
다행히 아이들의 표정이 어둡지 않습니다. 하지만 밝지도 않습니다. 그 중 선생님께 드릴 음료수를 일주일 내내 고민했다던 한 아이의 표정이 유난히 좋지 않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니 왠지 제가 나쁜 선생님이 된 것 마냥 마음 한 켠이 아려옵니다.
그 날 저녁, 학부모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일주일동안 제게 줄 음료수를 두고 고민했다던 아이의 어머님이셨습니다.
“선생님. 아이가 집에 와서 계속 울기만 하네요.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는지 물어봐도 도통 대답도 하지 않네요. 혹시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을까요?”
그 순간 아차! 머릿속에 천둥이 칩니다. 그 아이를 그냥 보내면 안되었음을 느꼈습니다. 어머님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고 아이와 통화가 가능한지 여쭈어 보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해주어야만 했습니다.
“체험학습 때 선생님께 음료수 드리고 싶었지?”
“네.” 울먹이는 목소리에 들릴 둥 마는 둥 대답을 합니다.
“어떤 음료수 드릴까 고민도 많이 했지?”
“네.”
“그런데 갑자기 음료수를 못 드리게 돼서 많이 서운했니?”
갑자기 전화기 너머에서 울음소리만 들립니다. 정말로 많이 서운했나 봅니다. 더 이상 통화가 힘들어서 어머님께 내일 이야기하겠다고 전해드리고 통화를 마쳤습니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일찍 출근했습니다. 항상 저보다 일찍 오는 아이기 때문에 오늘만큼은 먼저 와서 맞이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30분이 다 되어서 학교에 왔더군요. 부은 두 눈을 보니 얼마나 울었는지 보지 않아도 알 정도였습니다. 잠시 상담실로 불렀습니다. 또 울까봐 걱정이 되었거든요.(평소 울음이 많아 아이들이 가끔 놀리곤 하는 아이입니다.)
“어제 선생님께 음료수 드리고 싶었는데 못 드리게 되어서 많이 서운했구나. 선생님이 마음을 몰라줘서 많이 미안해. 선생님께 음료수 주고 싶은 마음만은 기쁘게 받을께.”
또 울음을 터뜨린 아이. 그러면서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음료수가 없잖아요.”
“아니야. 선생님은 음료수가 없어도 정말 기쁜데?”
그리고는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어떤 리액션보다 더 크고 더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제야 울음을 그치고 싱긋 웃어보이는 아이. 그 모습을 보니 다행이기도 하고 짠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이런 순수한 마음까지 법의 잣대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하지만 법이라는 건 모두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지는 것이니 아이들의 마음까지 헤아릴 수는 없겠죠.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동쪽의 예의바른 국가라는 뜻의 ‘동방예의지국’ 이라고 불리었습니다. 웃어른은 공경하여 먹을 것이 있으면 웃어른께 먼저 드리고 그 후에 먹는 것도 예의 중 하나였지요.
하지만 학교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볼 수 없습니다. 예의를 배우는 학교에서 볼 수 없다는 점은 참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주는 것 까지 그래야 하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법이고 학교 현장의 현실입니다. 지금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 또한 언제 그랬냐는 듯 차츰 익숙해질 미래의 우리 모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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